중국이 20년 넘도록 꽁꽁 숨긴 발해 고분군
Dvořák: Symphony No. 9 in E Minor, Op. 95, B. 178 "From the New World": IV. Allegro con fuoco · Wiener Philharmoniker, Herbert von Karajan & Antonín Dvořák
발해 황후 묘비명에 새겨진 고구려 계승의 결정적 증거는 묘비문에 명시된 '동국(東國)'이라는 표현과 '고려(高麗)'라는 국호의 사용, 그리고 묘지방식과 금제관식 등 고구려 고유의 전통문화를 완벽히 계승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국 지린성 허룽시(화룡현) 룽터우산(용두산) 고분군에서 발굴된 효의(孝懿)황후와 순목(順穆)황후의 묘비명 및 무덤 구조에서 발견된 핵심 증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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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東國)'의 자의식: 묘지명에 "덕은 동국(東國)에서 높고"라는 구절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발해가 중국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동쪽의 나라'라는 높은 수준의 역사적·문화적 주체의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증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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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식 무덤 구조: 순목황후의 무덤은 돌을 쌓아 기다란 방을 만들고 판석으로 천장을 덮은 전형적인 '고구려식 굴식 돌방무덤'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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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전통 금제관식: 발해 무덤에서는 최초로 고구려 특유의 조우관(鳥羽冠·새 깃털 모양 관장식) 전통을 잇는 금제 관식이 출토되어, 발해 황실이 고구려 지배층의 혈통과 권력 문화를 그대로 이어받았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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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高麗) 국호의 사용: 문왕 등 발해 국왕이 일본에 보낸 국서에 스스로를 '고려국왕'으로 칭한 것과 일맥상통하며, 발해가 고구려의 정통 후계 국가임을 스스로 선언하고 있습니다.
발해 황후 묘비석은 역사 왜곡을 시도하는 중국의 '지방정권론'에 맞서 발해가 고구려의 문화를 계승하고 황제의 칭호를 사용한 독립된 주권 국가였음을 보여주는 가장 명백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발해문화의 독자성
이나 일본과의 교통로에 있던 현재의 연해주 크라스키노 성
은 남아있는 성벽, 기와, 불상의 축조방법이나 온돌을 통해서 고구려와의 관련성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중국 길림성 화룡(和龍)의 용해(龍海)고분군에서는 고구려 특유의 관모(冠帽)인 조우관(鳥羽冠)과 매우 유사한 관모가 나와 발해와 고구려 문화의 유사성을 재확인해 주고 있다.
발해 문화의 독자성을 보여주는 사례들
• 왕은 가독부(可毒夫), 성인(聖人), 황상(皇上)이라 하고, 왕비는 황후(皇后)라고 칭함• 3성(선조성·중대성·정당성)과 6부(충·인·의·지·예·신부)의 명칭과 운영방식이 당과 달리 발해 특유의 것임
• 정효공주묘(貞孝公主墓)와 같이 무덤 위에 탑을 쌓아올린 묘제는 주변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발해만의 독특한 문화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