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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가 된 첫날 밤의 13시간 전설이 된 군인

유머과부하 📅 2026.06.06 13:23 👁 0 💬 0 👍 0

 

김만술

金萬述

 

한국전쟁 당시 경기도 연천의 베티고지전투에 참전한 군인.

 

김만술_존영.jpg

 

사망 연도 1991년

출생 연도 1931년

출생지 경상남도 함안

 

1947년 6월 육군에 입대하여 특무상사로 중화기중대에 근무하다가 현지 임관시험을 거쳐 소위로 임관, 1953년 제1사단 제11연대 제6중대 제2소대장으로 임명되었다.

 

소대장으로 임명되던 그날 오후, 얼굴도 미쳐 익히지 못한 34명의 소대원들을 이끌고 서부전선 임진강 건너편의 베티고지에 투입되어 중공군 2개 대대의 파상공격을 맞아 13시간 동안 19차례의 공방전을 치른 끝에 고지를 지켜냈다. 적의 인해전술 앞에 1대 11로 열세한 병력을 지휘하여 수류탄과 총검으로 백병전(白兵戰)을 벌였다.

 

때로는 참호 속에 들어가 고지 위에서 쏟아져 내리는 아군 포병의 진내사격(陣內射擊)을 받아가며 혈전을 치렀다. 살아남은 12명의 소대원들이 고지 위에서 헤아린 적의 전사자는 350명이었다. 청사(靑史)에 빛날 전공을 세워 태극무공훈장과 미국 십자훈장을 받았다.

1960년 육군대위로 예편한 다음, 경기도 시흥에 상이군경 용사촌을 세웠고, 대한상이군경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였다. 1991년 세상을 떠나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김만술_통일공원-김만술-소위-흉상_대한민국역사박물관_제1유형-full-size.jpg

 

6·25전쟁과 사람 > 전투를 이끈 군인들연천 베티고지전투의 영웅, 김만술 육군대위

 

경기도 연천군 임진강 북쪽에 위치한 베티고지는 제1사단의 전초기지로 최대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제1사단 11연대 2대대 6중대 2소대장 김만술 소위는 1953년 7월 15일 소대원 35명과 함께 고지를 지키고 있었다. 중공군 2개 대대 규모의 적군이 야간의 어둠을 이용하여 인해전술로 공격해오자, 김만술 소위와 소대원들은 이들과 5차례의 공방전을 벌였고, 13시간 동안의 치열한 혈전 끝에 적을 격파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아군의 서부전선 북단에 위치했던 고지였던 베티고지는 임진강이 주위로 둘러 흐르고 있는 작전상 요충지였다. 휴전이 베티고지를 점령하지 못하고 성립될 경우, 남쪽으로 2마일 이상이 주저항선에서 비무장지대로 결정되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그만큼 임진강 남쪽으로 아군은 물러나게 되는 것이었다. 이 같은 결과는 군사·지리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초래하는 것이었다.

 

베티고지는 중대 규모로 설정된 전초진지인 고지였지만, 고지를 유지함에 있어 제1사단 11연대 2대대장은 상대적으로 병력의 손실을 줄일 수 있도록 제7중대 1개 소대만을 잔류시키고 나머지는 철수시켰다. 제7중대 1소대는 1953년 7월 13일부터 15일까지 적의 공격을 받아 많은 피해를 입어 전력이 반 이하로 감소되었다. 이에 더 이상 버틸 능력이 없는 판단한 사단에서는 진지교대 명령을 제6중대 2소대장 김만술 소위에게 하달되었다.

 

김만술 소위는 특무상사에서 육군소위로 현지 임관하였는데, 그는 제2소대원 34명을 이끌고 7월 15일 12시 30분 베티고지를 향해 임진강을 단정으로 적의 포격이 빗발치는 가운데 도하하였다. 베티고지는 제1사단 주 전선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여 적의 제일 공격목표가 되어 있었다. 김만술 소위는 대대 규모로 추정되는 적의 공격을 받은 19시 30분경 소대원들을 독려하며 적과 맞서 싸우다가 아군의 지원포격이 개시되자 유개호로 피하였다. 아군의 지원포격에 사상자가 속출함에도 불구하고 적군은 계속 교통호로 육박하여 경계병과 유개호 입구에서 접전을 벌였다. 김만술 소대장은 중대 규모의 적이 22시경 양면으로 협공을 가해오자 포격을 요청한 후 유개호 속으로 들어갔다. 일부의 적은 막대한 포화 속에서도 근접하여 수류탄을 투척하였고, 이로 인해 무전기가 파손되어 통신이 모두 끊겼다.

 

적군은 7월 16일 04시가 지나면서 각각 소대 규모의 병력으로 다시 중앙봉 서북쪽과 서쪽으로부터 일시에 공격을 시작하였다. 아군의 지원초격이 집중되자 제2소대는 호 속으로 들어가 적의 진입을 수류탄으로 저지 격퇴하였다. 그러나 중대 규모의 적은 05시 30분경 중앙봉 북사면을 따라 공격을 하였다. 절반 이하로 줄어든 병력으로 김만술 소위는 수류탄을 투척하며 적을 저지하였다. 이때 교통호로 2명의 적이 뛰어들자 순간적으로 김 소위는 총검을 이용하여 사살하였다.

 

짙은 안개로 5m 앞을 분간할 수 없는 불량한 시계를 이용하여 퇴각했던 적은 06시 40분에 다시 공격을 가해왔다. 수류탄전에 이은 백병전이 피아 간에 전개되어 치열한 전투가 지속되었다. 안개가 걷히면서 적은 많은 사체를 남긴 채 07시 30분경 퇴각하고 말았다. 이에 곧바로 진지 일대를 수색하여 소대는 부상당한 3명의 중공군을 포로로 잡았고, 제6중대 3소대와 08시에 진지를 교대하고 중대로 복귀하였다.

제2소대는 김만술 소위의 지휘하에 진지는 사수하였지만, 2소대원도 많은 인명피해를 입었다. 소대장을 포함한 총 35명의 소대원 가운데 살아 돌아온 대원은 경상자를 포함한 12명 뿐이었다. 김만술 소위는 314명의 적을 사살하고 450명의 부상자를 발생시키는 전공을 거두어 미국 십자훈장을 받았고, 국군 최고의 영예인 금성태극무공훈장을 1954년 7월 6일 수여받았다.

 

파주-김만술_파주-통일공원-김만술-소위-흉상_대한민국역사박물관_제1유형-full-siz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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