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증권 시행 D-5개월, 법이 못 따라오면 상품은 어떻게 되나

내년 2월 토큰증권 제도가 시행을 앞두고 있는데 정작 비금전 신탁수익증권의 발행 근거를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국회 문턱에서 다섯 번째 헛물을 켰다. 여야가 같은 방향의 법안을 각각 냈고 정부조차 4년 전부터 필요성을 인정해온 사안인데도 실제 심사는 시작조차 못 한 채 밀리고 있다. 제도 시행일은 못 박혀 있는데 법적 근거가 계속 뒤로 밀리는 이 어긋난 타이밍이 투자자 입장에서는 더 중요한 신호다. 정책 발표와 입법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짚어본다.
모범규준은 나왔는데 법은 없다는 이상한 상황

금융위원회가 이달 초 토큰증권 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비금전 신탁수익증권의 기초자산 요건과 공시, 청약·배정 방식까지 담은 모범규준을 내놨다는 사실 자체는 진전이다. 문제는 이 모범규준이 상품을 어떻게 설계할지에 대한 세부 기준일 뿐, 애초에 그 상품을 발행할 수 있다는 법적 근거를 대신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자본시장법상 비금전재산을 신탁한 경우 수익증권을 발행할 수 있다는 원칙 조항이 없으면, 사업자는 결국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이나 자산유동화법상 유동화계획 같은 예외적 우회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혁신금융서비스는 지정 기간에 한계가 있고 자산유동화법은 자산보유자 자격 요건이 까다로워 실질적으로 조각투자 시장 전반을 커버하기 어렵다. 결국 시행일은 다가오는데 정작 상품을 만들 수 있는 법적 토대는 여전히 임시방편에 머무는 셈이다. 이 구조가 그대로 굳어지면 토큰증권 인프라만 갖춰지고 실제 유통될 상품은 제한적인, 속 빈 강정식 출발이 될 가능성이 있다.
네 번의 무산, 다섯 번째도 같은 패턴

이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이미 네 차례 법안소위에 상정됐지만 의결에 이르지 못했고, 이번에 다섯 번째로 다시 밀렸다. 여당인 민주당에서 같은 방향의 법안이 새로 발의되면서 이번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결과는 동일했다. 여야 이견이 있어서가 아니라 앞선 안건 논의가 길어져 심사 순서 자체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이 반복되는 패턴이라는 게 더 불편한 신호다. 국회 일정이라는 변수가 정책 시행 시점을 사실상 좌우하는 구조라면, 시장 참여자들은 정책 발표 자체보다 국회 일정표를 더 예민하게 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런 지연이 반복될수록 STO 관련주에 대한 기대감도 발표 시점마다 반짝했다가 사그라드는 패턴을 이어갈 공산이 크다.
조각투자·STO 관련주, 기대와 현실의 괴리

카사코리아를 비롯한 조각투자 플랫폼들이 이미 겪었던 영업권 손상 이슈는 법적 근거 미비가 단순한 행정 지연이 아니라 실제 기업가치에 반영되는 리스크라는 걸 보여준 사례다. 비금전 신탁수익증권 발행 근거가 계속 국회에 머무는 한, 부동산이나 미술품, 저작권 등 비금전 자산을 기초로 한 조각투자 상품 라인업 확장은 구조적으로 제약될 수밖에 없다. 증권사와 신탁업 관련주 입장에서는 토큰증권 관련 신사업을 준비하고 있어도 정작 매출로 연결될 상품군이 좁아지는 딜레마에 놓이게 된다. 시장이 토큰증권 테마에 반응할 때마다 정책 발표 뉴스에는 민감하게 움직이면서도 정작 입법 지연 뉴스에는 둔감했던 경향이 있는데, 이 비대칭이 계속되면 향후 실망 매물이 한 번에 몰릴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정책 발표 시점의 단기 모멘텀보다 실제 발행 근거가 언제 확정되는지를 더 냉정하게 추적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이 법안의 통과 여부가 STO 관련주의 밸류에이션을 재조정하는 실질적 트리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입법 공백이 만드는 시차 리스크

내년 2월 토큰증권 제도 시행과 비금전 신탁수익증권 발행 근거 마련 사이의 시차가 벌어질수록, 시장에 나올 수 있는 상품군은 당분간 금전신탁 기반 수익증권 위주로 좁혀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곧 초기 토큰증권 시장의 다양성과 규모가 시행 초반부터 제한될 수 있다는 뜻이고, 관련 인프라에 투자한 증권사나 예탁결제원 시스템 참여사들의 초기 실적 기여도 예상보다 더디게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중소·혁신기업의 자금조달 통로 확대라는 애초의 정책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는 점도 짚어야 한다. 금융위가 2022년 신탁업 혁신 방안을 발표하며 밝힌 원칙적 허용 방침이 4년째 법제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책 의지와 입법 속도 사이의 괴리가 얼마나 구조적인지를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이 기대할 수 있는 건 결국 국회 정기국회 일정 내 법안 처리 여부이며, 그 전까지는 관련주에 대한 눈높이를 낮춰 접근하는 게 합리적이다.
토큰증권이라는 제도 자체는 이미 확정된 미래지만, 그 미래를 채울 상품의 법적 근거는 여전히 국회 회의실 밖에서 대기 중이다. 발표된 정책과 실제 입법 사이의 시차를 얼마나 좁히느냐가 이 시장의 초기 흥행을 결정할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관련주에 관심 있는 투자자라면 정책 발표 뉴스보다 국회 법안소위 일정을 더 촘촘히 챙기는 편이 낫다. 다섯 번째 무산이 여섯 번째로 이어지지 않을지, 다음 임시국회 일정이 이 시장의 진짜 분수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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